20250723 수요저녁예배 설교 (이사야 23:1-18 /두로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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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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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hcQRO86oCYE?si=nQLo1rZ9c2Ec_1gL
(설교 요약본)
고대 도시 두로는 오늘날의 레바논 지역에 있었던 해상 도시로, 지중해 연안에서 세계적인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바벨론과 더불어 경제적, 문화적으로 세계의 중심지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도시였습니다. 두로는 “돈이 곧 힘”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가장 성공한 도시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눈부신 성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과 탐욕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 본문은 두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 그리고 회복까지 다루고 있으며, 단지 한 도시의 예언이 아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주시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1. 두로의 멸망에 대한 애가 (1-7절)
1절에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두로의 멸망을 선포하십니다. “다시스의 배들아 슬피 부르짖으라” 무역의 중심이었던 두로가 황무하게 되고, 외국 땅 깃딤에서도 이 소식이 전해집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인간의 경제력과 기술력도 무용지물이 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전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보이는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그것들을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2-3절에서 시돈과 두로가 바다 무역을 통해 부를 쌓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두로는 "열국의 시장"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잠잠하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성공에 도취하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입을 다물라는 명령입니다.
4절에서는 시돈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산고와 출산, 양육이 끊어지는 저주를 받습니다. 이는 도시의 미래가 사라지고 생명이 끊긴다는 의미입니다. 교회와 다음 세대 사역도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 뿌리를 두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5절에서 두로의 멸망 소식은 애굽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고, 한 문명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쉽게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6절에서는 사람들이 도망치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위기를 만났을 때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7절은 두로의 과거 영광과 현재 폐허가 된 현실을 대비하며 말합니다. 세상적 성공은 하나님 없이 교만하면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이것이 과거의 희락의 성읍이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2. 두로의 교만에 대한 심판 (8-14절)
8절에서는 두로의 위세를 묘사합니다. "면류관을 씌우던 자", "상인들은 고관들이요 무역상들은 존귀한 자들"이었습니다. 두로는 세계 경제를 주도했지만, 그 영화로운 도시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입니다.
9절에서 선포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 하나님은 모든 영화를 욕되게 하시고, 교만한 자들을 멸시하게 하십니다. 우리 역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끝까지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10절은 두로의 영향권 아래 있던 다시스가 자유롭게 무역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권세는 하나님이 거두시면 한순간입니다. “나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우상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11절은 하나님께서 바다 위에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는 장면입니다. 두로의 견고한 성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너집니다. 우리는 성공보다 순종, 자랑보다 경외를 선택해야 합니다.
12절은 시돈이 깃딤으로 피신하려 하지만, 거기서도 평안을 얻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심판을 피하는 길은 도피가 아니라 회개입니다.
13절은 갈대아 땅도 앗수르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고 하며, 모든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없이 교만했던 나라들은 결국 망했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로 읽어야 합니다.
14절은 1절의 후렴처럼 반복되며, 두로의 멸망을 다시 강조합니다. 견고해 보이던 것도 하나님께서 치시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 70년 후에 두로가 회복될 것 (15-18절)
15절에서 두로는 70년 동안 잊혀지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정하신 징계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회복된 두로는 진정한 변화가 아닌, "기생의 노래" 같은 회복, 겉만 번듯한 세속적 번영으로 나아갑니다.
16절에서 두로는 다시 주목받기 위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회개가 아닌 자기 이익을 위한 행동일 뿐입니다. 우리의 회복이 진짜 회복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 중심, 예배 중심으로 방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17절에서 하나님은 두로를 돌보시지만, 두로는 그 기회를 세상과의 음란한 거래에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회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합니다.
18절은 결론입니다. 두로의 무역 이익이 하나님께 거룩히 돌려지고, 여호와 앞에 사는 자들이 배불리 먹고 잘 입게 됩니다. 이 말씀은 실제 역사 속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유대 백성을 귀환시켜 성전을 재건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자재와 자원을 공급하였습니다. (에스라 3:7)
또한 예수님은 두로 지역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나셨고, 사도 바울도 두로에서 성도들과 교제하고 기도했습니다. (마 15:21–28, 행 21:5)
두로는 결국 복음의 빛을 받고, 하나님 앞에 사는 자들이 존재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도시의 부와 사람들까지도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신 것입니다.
결론
이사야 23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교만한 자는 반드시 낮아지며,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자는 그 회복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안의 교만을 꺾으시고, 회복된 자들에게 사명으로 부르십니다.
오늘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지, 회복의 기회를 주셨을 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순종하는 삶입니다. 두로의 멸망과 회복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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