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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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8 주일오전예배 설교(눅 7:11-17 / 울지 말라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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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5-06-08 16:19 조회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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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7_45DdO7Ybo?si=SIyLSEMg3JNXcdB4


(설교 요약본)


우리의 인생 여정에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슬픔과 고난의 순간이 반복적으로 찾아옵니다. 

예상치 못한 사건 앞에 무너지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앞에서 삶의 의미조차 흐려질 만큼 깊은 절망을 경험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신 걸까?", "내 눈물은 주님께 닿고 있는 걸까?"

오늘 본문은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놀라운 응답을 전해 줍니다. 생명의 무리와 죽음의 무리가 나인 성 성문 어귀에서 정면으로 마주치며, 그 중심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주님은 절망 중에 있는 과부를 보시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시며 말씀하시고, 결국 아들을 다시 살려 주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동일하신 모습으로 우리 삶 가운데 찾아오십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인 “울지 말라, 일어나라”는 말씀 안에는 주님의 위로와 능력,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다음 네 가지 복음의 진리를 깊이 새기고자 합니다.


1. 주님은 우리의 아픔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13절을 보면,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장례 행렬 가운데 있는 한 여인을 보셨고, 그녀를 ‘보신다’는 표현 속에는 단순한 시선이 아닌, 깊은 공감과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보다’는 헬라어 “에이도”는 “주목하다, 마음에 품다”는 뜻이며, ‘불쌍히 여기셨다’는 “스플랑크니조마이”는 창자가 뒤틀릴 정도의 깊은 연민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의 아픔도 그처럼 깊이 보고, 느끼시며, 불쌍히 여기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상처와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깊이 공감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2. 주님은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단지 그녀를 보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울지 말라”는 말씀을 직접 건네십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는 이 말씀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들을 잃은 여인에게 울지 말라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아픔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곧 그 눈물을 그치게 하실 분이시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능력입니다. 죽은 자도 일으키는 권세가 있는 살아 있는 말씀이며,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지닌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을 주시는 위로의 음성입니다. 이사야 40장 1절, 히브리서 4장 12절 등은 하나님의 말씀의 위로와 능력을 증언합니다.

주님의 “울지 말라”는 말씀은 막연한 감정 조절의 말이 아니라, 곧 이루실 회복을 전제로 한 믿음의 선언입니다.


3. 주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새 생명을 주십니다

14-15절에서 예수님은 장례 행렬 속으로 다가가셔서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단지 기적이 아니라,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는 생명의 주이심을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당시 시신이나 관에 손을 대는 것은 율법상 부정한 행위였지만, 예수님은 그 율법조차 초월하여 사랑으로 죽음을 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세 번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회당장의 딸, 나인성 청년, 나사로입니다. 공통점은 모두 주님의 ‘말씀’으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죄로 죽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는 복음의 예표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기도와 예배, 믿음의 열정이 식고 무너졌을 때,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믿음으로 이 말씀을 붙드십시오. 주님은 지금도 죽은 심령을 살리십니다.


4. 주님의 은혜에 바르게 반응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16-17절을 보면, 이 기적을 목격한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여기서 ‘두려움’은 공포가 아닌,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느끼는 경외심입니다. 그들은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깨달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그 은혜를 ‘우연’이나 ‘행운’으로 여기지 않고, 즉시 하나님께 감사와 예배로 반응해야 합니다.

시편 116편 12-14절의 고백처럼, 받은 은혜가 클수록 그 은혜에 대한 반응도 마땅히 커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는 반드시 입술과 삶으로 그 은혜를 나누고 전해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 7장 11–17절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절망의 장례 행렬을 생명의 행렬로 바꾸신 은혜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과부를 보셨고, 불쌍히 여기셨으며, 말씀하셨고,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단지 한 여인의 개인적인 회복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아픔을 보시며, 능력 있는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죽은 심령을 살리시며, 은혜에 반응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내 딸아, 내 아들아, 울지 말라. 내가 너를 보고 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주님의 이 음성이 여러분의 마음에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심령이 다시 살아나고, 믿음이 회복되며, 주님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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