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0 수요저녁예배 설교 (이사야 29:1-16 /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과 영적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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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 : https://youtu.be/er1HCoyh-ME?si=Deq_PSDJQHaS2_r2
(설교 요약)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주신 심판의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은 다윗이 정복하여 하나님의 성소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읍으로, ‘아리엘(하나님의 제단)’이라 불렸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 예루살렘이 더 이상 영광의 성읍이 아니라 불타는 제단, 곧 심판의 상징이 될 것이라 경고합니다. 그곳에서 절기와 제사가 드려졌으나 형식에 그쳤고, 마음은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가장 큰 위기는 외적 환난이 아니라 껍데기만 남고 중심이 사라질 때입니다. 입술은 하나님을 높이나 마음은 멀어져 있는 영적 무지가 심판을 부릅니다. 오늘 우리는 (1) 예루살렘이 어떻게 낮아졌는지, (2) 대적의 헛된 공격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주권, (3) 백성들이 왜 영적 무지에 빠졌는지를 살피며, 형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1. 예루살렘의 낮아짐 (1-4절)
1) 아리엘과 심판의 불사름
“슬프다 아리엘이여…”(1절). ‘아리엘’은 ‘하나님의 제단’을 뜻하며, 제단은 하나님께 제물이 드려져 불로 태워지는 곳, 곧 예배와 헌신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루살렘 자체가 제물처럼 불사름을 당할 것이라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 성읍이었지만 불순종으로 심판의 불길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2) 형식만 남은 절기와 예배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백성은 유월절·맥추절·수장절을 지켰으나, 그것은 형식적 습관이었습니다. 입술은 찬양하되 마음은 세상을 향했고, 제단에는 제물이 올려졌으나 삶은 죄로 가득했습니다. 성전에 발걸음을 옮겼으나 마음은 하나님께 향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자리만 채우는 예배가 아니라 중심을 원하십니다(잠 23:26). 중심을 잃은 예루살렘은 제단의 불길 같은 심판을 맞이합니다. 오늘 우리도 의무감·습관적 예배를 돌아보며, 찬양과 헌신에 마음이 담겨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3) 낮아짐과 신음(3–4절)
하나님은 대적을 도구로 예루살렘을 포위하시고 치십니다. 영광은 사라지고 땅에서 나직이 신음하는 상태로 낮아집니다. “신접한 자의 목소리”처럼 희미하고 비참한 소리만 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패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며, 형식적 예배에 대한 회개 촉구입니다.
적용: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을 보십니다. 겉으론 열심이라도 중심이 없으면 낮아질 수 있습니다. 예배·기도의 모양이 있어도 중심이 빠지면 종교적 의무일 뿐입니다. 우리 교회도 겉모습이 아니라 정직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대적의 헛된 공격 (5-8절)
1) 대적도 심판을 피하지 못함(5–6절)
앗수르·바벨론이 강해 보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티끌과 겨에 불과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 지진, 폭풍, 불꽃으로 친히 징벌하십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한 천사로 하룻밤 사이 앗수르 18만 5천을 치셨습니다(왕하 19:35).
2) 대적의 기대가 헛됨(7–8절)
예루살렘을 친 열방은 전리품과 영광을 꿈꾸지만 “꿈같이, 밤의 환상같이” 사라집니다. 주린 자가 꿈에 먹고 깨면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시고 깨면 곤비한 것처럼, 그들의 승리는 허무합니다.
3) 오늘의 적용
오늘도 교회를 조롱하고 믿음을 희석하려는 시도들이 있으나,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우리 복용교회도 목회 전환기, 내부의 염려, 다음세대 도전 등 현실이 있으나, 이 모든 것은 겨와 티끌 같아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분노나 힘이 아니라 믿음과 기도입니다. 예배와 말씀에 집중할 때 하나님이 친히 교회를 지키시고 대적을 무너뜨리십니다. 그러므로 낙심·두려움 대신,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붙잡힌 공동체로 서야 합니다.
3. 백성의 영적 무지 (9-16절)
1) 혼미의 영과 지도자의 눈멀음(9–10절)
그들의 비틀거림은 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더 큰 비극은 선지자와 지도자까지 눈이 감긴 것입니다. 지도자가 눈을 감으면 백성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듯 함께 구덩이에 빠집니다(마 15:14). 지도자일수록 먼저 말씀 앞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2) 봉한 책이 된 말씀(11–12절)
계시는 있으나 그들에게는 봉한 책 같습니다. 글 아는 자는 “봉해졌다”, 글 모르는 자는 “모른다” 합니다. 이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완고한 마음의 문제입니다. 성경이 손에 있어도 읽지 않고, 말씀을 들어도 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열려 있으나 실제로는 닫힌 책입니다.
3) 입과 마음의 불일치(13절)
입술은 가까이하나 마음은 멀리 떠났습니다. 사람의 계명(전통·습관)에 묶인 경외는 헛됩니다. 출석·찬송·청취가 있어도 감사·고백·순종이 없다면 껍데기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찾으십니다.
4) 지혜와 총명의 상실(14절)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인데(잠 9:10), 마음을 드리지 않자 지혜와 총명이 가려졌습니다. 정보는 많아도 참 지혜가 없는 시대의 혼미가 이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 중심을 잃고 인간 계산으로만 움직이면 길을 잃습니다.
5) 토기장이를 무시하는 교만(15–16절)
그들은 계획을 하나님께 숨기고 어두운 데서 자의로 행했습니다. 진흙이 토기장이를 거스르는 어리석음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감찰하시며 모든 것을 드러내십니다(히 4:13).
정리: 예루살렘의 붕괴 원인은 성벽·군사력이 아니라 영적 무지입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형식으로 만족하며, 마음이 떠나 교만해진 결과입니다. 우리 교회의 진짜 위기도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형식화입니다. 그러므로 (1) 말씀을 더욱 사모하고, (2) 마음을 다해 예배하며, (3)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겸손한 공동체로 결단해야 합니다.
결론
세 가지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1) 낮아짐: 중심을 드리지 않아 심판의 불길에 던져짐.
(2) 대적의 헛됨: 강한 듯하나 하나님 앞에 티끌·겨로 사라짐.
(3) 영적 무지: 입술의 경외와 마음의 분리, 말씀 불순종, 토기장이 무시.
따라서 신앙의 본질은 마음 중심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진정, 습관이 아니라 중심, 외식이 아니라 전적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앞에 부흥·건축·다음세대라는 과제가 있으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요 말씀의 반석 위에 세워졌으니 흔들리지 않습니다. 대적의 공격은 결국 헛것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형식에서 벗어나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공동체가 되는 일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13절).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우리의 마음을 다시 주께 드립시다.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하여 거룩하고 정결한 교회로 굳게 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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